나로 말하자면 세상에 나온 지 7년 된 말(馬)이다. 우리들 평균 수명은 30세. 우리 나이를 사람으로 환산하려면 일반적으로 태어나서 6살까지는 5.5배를 곱해주고, 7세가 넘어가면 5배를 곱하면 사람 나이에 해당한다. 그러니 내 나이 일곱 살은 인간으로 치면 혈기왕성한 서른다섯 청년인 것이다.

너른 들판 위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늘 따라 지는 노을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인간에게 저렇게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비친다면 좋겠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인간에게 선택되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니까. 좋은 주인을 만나 한평생 동고동락하며 그에게 이로운 동물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랄 것이 없겠다.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주인을 만나 7년째 행복한 목장 생활을 즐기고 있다. 정기적으로 기수와 교관들이 훈련을 하고,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부모 손잡고 우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들은 겁을 먹는 경우가 흔하다. 울타리 너머 보고 있으면서도 무섭다며 아빠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어른들조차 손길 한번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나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잼 7화’에서는 내 몸에 대한 얘기를 들려줄까 한다.

| 먼저 내 눈을 바라봐!

쑥스럽지만 우리는 동물계의 훈남, 훈녀라고 자부한다. 우리의 크고 영롱한 눈망울을 보라. 그윽하게 바라보면 누구든 매혹될게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이 얼굴의 양 측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평평한 얼굴에 수평으로 눈이 있어서 사물을 한눈에 본다고 표현하지만, 우린 두 개의 시야로 보기에 그럴 수 없다.

눈이 얼굴의 양 측면에 있다 보니 시야가 각각 독립적으로 형성되고, 양쪽 시야에서 보이는 각각의 모습을 뇌에서 조합해 주변을 이해하고 판단한다. 인간의 입장에선 앞을 보는 것이 불편하겠구나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 굳이 머리를 돌리지 않아도 좌우를 넓게 살필 수 있다. 360도가 모두 시야에 든다고 상상해 보라. 양쪽 방향을 동시에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우리만의 탁월한 능력이다.

단, 워낙 시야가 넓다 보니 전방의 물체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경마에서 말머리에 차안대를 씌우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달리는데 관중석이 훤히 다 보인다면 얼마나 거슬리겠는가. 심지어 후속마까지 눈에 들어와서 사고의 위험까지 있다. 경주에서 전방을 주시하며 질주하려면 차안대는 필수용품이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1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어도...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윤기 나는 말갈기가 바람결에 흔들린다. 나는 이런 미세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요즘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암말이 있는데, 800m나 떨어 진 곳에서 그녀가 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들이 이용하는 버스로 한 코스가 넘는 거리다. 우리 무리 중 누군가가 1km나 떨어진 거리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울면, 우리 동료들은 즉각 반응을 한다. 모든 소리가 너무도 잘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 귀에는 16개의 근육이 분포돼 있어 상당히 예민하게 움직인다. 심지어 귓바퀴는 180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방향전환도 한다. 어떤 소리가 들리면 그 방향으로 재빨리 귓바퀴를 돌려 소리의 정체를 추적한다. 지구상에서 우리의 청력을 뛰어 넘는 종족은 많지 않을 거다. 먼 곳의 폭풍, 높은 곳의 바람은 물론이고 공기가 움직이면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파동까지 느끼고,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지진의 전조까지 감지한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들을 수 있으니 신기해 보일 것이다. 멀리서도 주인의 발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려 주니 우리 주인도 나를 무척 기특하게 생각하고 아껴준다. 문제는 쓸데없는 잡음까지 들을 수 있어 피곤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 낌새를 알아차리는 숨은 코, 야콥슨 기관을 아시나요?

우리 동물들은 후각이 매우 민감하다. 콧구멍 안쪽에 위치해 있는 ‘야콥슨 기관’이라는 은밀한 신체 기관이 상당히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야콥슨 기관은 코 안쪽 입천장 위쪽에 주머니처럼 있는데 중요한 냄새를 맡을 때는 여기에 공기를 저장해 냄새를 분석한다. 이건 비밀인데, 암말과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 우린 모른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기 위해 윗입술을 말아 올리고 야콥슨 기관에 공기를 채운다. 그녀가 수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해도 냄새만으로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부러운가.

망아지들끼리 몰려다니며 장난치고 놀다가도 용케 어미를 찾아 가는데 이것도 모자간의 특징적인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반드시 콧구멍을 바짝 대고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우리 성격이 조심스러운 것도, 새로운 먹이를 준다고 덥석 받아먹는 법이 없는 것도, 이처럼 후각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경주마들이 마방에 새로운 깔짚이 깔리면 짓궂을 정도로 반드시 오줌을 누는데, 그 친구들은 오줌싸개가 아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냄새를 뿌려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자.

우리 주인은 나에게 새로운 용품을 주기 전에 미리 냄새를 맡고 익숙해지게 만든다. 굉장히 신사적인 양반이다. 한번은 주인이 친구들과 나누는 얘기를 들었는데 인간에게도 야콥슨 기관이 남아 있다는 거다. 육감이라고 하던가. 엄마가 해주던 음식 냄새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체취를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코에 퇴화된 야콥슨 기관 때문이라고 한다. 헬렌 켈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앞을 보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후세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녀가 이런 멋진 말을 했다고 한다. “살아온 모든 세월을 가로질러 우리를 데려가는 강력한 마법사, 그것이 냄새다.” 라고. 인간이여! 당신들도 이 신비로운 야콥슨 기관을 한번 찾아보시라.

| 탄탄한 근육과 다리는 우리 몸의 정수!!

사람들은 탄탄한 근육질의 남자들을 보고 말근육을 가졌다며 극찬하곤 한다. 배우며 아이돌 스타며 자신들의 말근육을 앞 다퉈 자랑한다. 우리가 부러운 거 충분히 이해한다. 이번 생에는 말로 태어나지 못 했으니 운동이라도 하라고 권하고 싶다. 가장 좋은 것은 마라톤이다. 그도 힘들다면 다각다각 조깅을 하거나 빨리 걷는 것도 좋다.

우리는 질주한다. 전속력으로 달리게 되면 당연히 발굽에 충격이 가해진다. 이 충격은 우리 체중의 약 8배에 달하는데 내 몸무게가 500kg 이니 4톤의 무게가 발굽에 가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달리는 이유는 다리와 발굽의 구조가 교묘해서 그 충격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앞다리는 체중을 지탱하고 충격을 흡수해 몸을 지면에서 들어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뒷다리는 달릴 때의 추진력을 담당해 준다. 그 하중을 실어 주는 것이 발굽이다. 우리에게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발굽이다. 발굽의 주성분은 젤라틴인데 달릴 때 지면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충격을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발굽은 열에 강하고 사람의 손톱처럼 한 달에 약 9mm 정도가 자란다. 경주마들은 보통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굽을 깎고 새 신발을 갈아 신는다. 장제사가 만든 편자인데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든 명품 신발이라며 자랑하더라.

우리는 사람보다 훨씬 크지만, 훨씬 예민하고 섬세하다. 잘 보고 잘 들으며 잘 느낄 수 있다. 그동안 혹시 우리가 두려웠던 사람이 있다면 주말에 종마목장을 한번 찾아오시라. 우리와 지그시 눈을 맞추고 등짝을 쓰다듬으며 넘치도록 풍부한 감각의 세계를 확인해보시라.

<출처 및 참고>
*두산백과 (말의 신체)
*코:낌새를 맡는 또하나의 코 야콥슨 기관_ 저자 라이얼 왓슨